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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가(春香歌)>

춘향가는 남원 퇴기 월매의 딸인 성춘향이 남원 부사의 아들인 이몽룡과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었으나 이별한 뒤에 신임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여 옥에 갇히자 암행어사가 된 몽룡이 구해 준다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으로, 문학성으로나 음악성으로나 연극적인 짜임새로나 지금까지 전해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서 가장 예술성이 높은 마당으로 꼽힌다.

판소리 춘향가의 춘향과 몽룡의 사랑 이야기는 여러 가지 가설이 많았으나, 요즈음에는『동야휘집』에 전하는 성세창의 사랑 이야기나『용성지』에전하는 기생 이야기와 같은 여러 사랑 이야기들이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로, 또 노정의 암행어사 이야기나 박문수 암행어사 이야기와 같은 여러 암행어사 이야기가 이몽룡 암행어사 이야기로 되어, 그 전해지는 이야기를 각색(脚色)해 소리로 짠 것이라는 말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춘향의 이야기가 어느 때부터 판소리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영조 30년에 유진한의 문집인『만화집』에 실린 ‘가사 춘향가 이백귀’라는 글에, 가색이 춘향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부르는 것이 시로 읊어져 있으며 순조 때의 문인인 송만재가 적은‘관우희’라는 글에는 춘향가가 판소리 열두 마당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음으로 보아 춘향가는 적어도 숙종 무렵부터 판소리로 불리기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춘향가는 이야기의 줄거리나 소리의 음악적인 짜임으로 따져, 첫째로 몽룡이 광한루에서 춘향과 만나는 대목, 둘째로 몽룡이 천자풀이를 하는 대목에서 두 사람이 사랑가를 부르는 대목까지, 셋째로 이별하는 대목, 넷째로 신연맞이 대목에서 춘향이 옥중가를 부르는 대목까지, 다섯째로 몽룡이 과거에 급제하고 전라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와서 춘향 어머니와 옥에 갇혀 있는 춘향을 만나는 대목까지, 여섯째로 변 사또의 생일잔치가 벌어지는 데에서 뒤풀이까지로 나눌 수 있다.

유명한 대목으로는 적성가·천자뒤풀이·긴 사랑가·자진사랑가·이별가·쑥대머리·농부가·옥중상봉·어사출도 등이 있다.
신영희 <춘향가 1-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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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번호 L-100004378/4382(5CD)
제작/기획사 로엔엔터테인먼트
발매 년도 2011
소개곡/음반 CD 1 T3:적성가 소리끄기
비고
제대로 된 완창음반이 나왔다. 신영희 명창의 만정 김소희제 ‘춘향가’이다. 신 명창은 진도 출신이다. 어릴 적부터 부친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10대에는 안기선, 강도근 명창을 사사하였으며, 20살 무렵에는 김준섭, 장월중선, 박봉술 선생으로부터 소리를 배워 판소리 5바탕을 모두 익혔다. 마지막으로 김소희 명창을 만나 그 동안 배워 온 판소리를 만정제와 견주어 만정의 소리제로 정리하였다. 그의 판소리 학습은 김소희 명창이 작고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음반에 실린 춘향가는 신영희 명창에 의해 처음 음반으로 소개되는 만정제 ‘춘향가’로, 신 명창은 1973년에 목포 중앙극장에서 ‘춘향가’를 완창 발표하였으며, 1992년에는 김소희제 ‘춘향가’로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준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신 명창만큼 학습이 깊은 소리꾼도 드물다

신 명창은 판소리를 대중적으로 친밀하게 만들어 놓은 장본인으로, 즉흥적으로 판을 장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소리꾼이다. 중후한 성음을 지닌 품격있는 소리로, 발림이 크고 활달하며 소리가 시원시원하다.

단가없이 시작되는 춘향가를 ‘초두’부터 ‘마오 마오 그리마오~ 얼씨구나 절씨구’까지 5장의 음반에 52트랙으로 자세하게 나누어 담았으며, 마지막에는 이날치제 ‘비맞은 제비처럼’ 대목을 보너스트랙으로 실었다. 북은 전국 고수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신규식이 잡았다.

자신의 음반에 만족하는 연주자는, 소리꾼은 없다. 또 감상자는 소리꾼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는 음반이 있다. 필자는 또 한 번의 ‘춘향가’를 기대해 본다.(2012.1월. 객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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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희 <춘향가>(서울음반:SRCD-1293)(아래 동일곡, 관련곡이 수록된 음반 참조)

한시대를 최고의 명창으로 풍미하였던, 김소희(金素姬, 본명:김순옥)는 1917년 12월 1일 전북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에서 태어났다. 김소희는 이화중선의 소리를 듣고 감동받아 판소리에 입문했다 한다. 1930년 송만갑 문하에 들어가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여 1934년에 정정렬에게, 1938년에 박동실에게 판소리를 배웠고 광복 후에는 정응민, 박록주, 김여란 등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그리하여 김소희의 판소리는 여러 소리제로 이루어져 있다.

김소희는 춘향가의 경우에 정정렬제를 배우고 나서 먼저 배웠던 송만갑제를 거의 잊었다가 박록주와 박봉술에게서 그 일부분을 되찾았다. 그리하여 김소희는 춘향가 중 <긴 사랑가>를 정정렬제(사랑 사랑)와 정응민제(만첩청산) 두 가지로, <기생점고>부터 <십장가>까지는 송만갑제로, <옥중가>는 정정렬제(천지 삼겨)와 박동실제(동풍가) 두가지로, <방자가 춘향집 가리키는 데>부터 <사랑가>는 대개 정응민제로, 나머지 대목은 대개 정정렬제로 불렀다. 이 가운데 정정렬제는 김소희가 광복 후 김여란을 찾아가서 복습하여 채워 넣은 것이다.

김소희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명창은 정정렬과 박동실이다. 김소희의 소리 스타일이 이들의 소리를 가장 많이 닮아있고 정정렬과 박동실의 소리제가 김소희의 청아한 목소리와 여성적인 섬세함, 서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소리이념과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소희가 판소리에 입문하는 데 동기를 제공한 이화중선도 김소희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하겠다. 김소희는 장단과 붙임새의 운용에 있어 변화가 많고 매우 기교적이다. 슬픈 대목이 많은 심청가도 감정적으로 부르지 않고 서정적이고 청아한 느낌이 나게 부른다. 거친 성음이나 힘겨운 고음 처리는 청중에게 자칫 부담을 줄 수 있는데 김소희는 고운 목을 지녔고 옛 더늠을 자신의 목에 맞게 다듬어 깔끔하게 구사하기 때문에 그의 소리는 부담이 없다.

김소희는 판소리 외에도 여러 방면의 예능에 두루 능했다. 김소희는 강태홍, 정남희, 김종기, 정남희, 성금연, 김윤덕에게 가야금산조를, 전계문에게 가곡과 시조를, 김용근에게 거문고와 양금을, 정성민과 손창식에게 승무를, 김희조에게 서양 악보를 배웠다. 그리고 김소희는 서화에도 능했고 승무, 덧배기춤, 살풀이 등의 춤은 무용가들이 놀랄 정도의 수준급이었다. 1995년 4월 17일 김소희는 세상을 떠났다. 김소희의 영결식은 국악인장으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치루어졌다.

김소희는 1964년에 판소리 분야에서는 처음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명창이다. 그는 일제 때부터 지금까지 귀명창의 꾸준한 인기를 확보하고 있으며 판소리 명창 중 유일하게 유성기음반 시대부터 콤팩트디스크 시대까지 폭넓은 기간 동안 많은 녹음을 남겼다.

김소희의 수많은 음반 중에서도 1978년에 취입된 이 춘향가 완창집 음반은 우선 그의 장기인 춘향가 녹음집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리고 그가 독창으로 취입한 첫 판소리 완창집이라는 점, 그의 전성기 때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 김명환 명고의 반주로 취입되었다는 점, 쉽게 구할 수 있는 음반이라는 점에서 명반의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2004.11.30)
동일곡, 관련곡이 수록된 음반
· 안숙선 <춘향가>(삼성뮤직:SCO-093AHN)
· 빅터유성기원반시리즈 1 <춘향전 전집>(서울음반:SRCD-1087)
· 김소희 <춘향가>(서울음반:SRCD-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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