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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가(赤壁歌)>

적벽가는 중국 위나라, 한나라, 오(吳)나라의 삼국 시대에 조조와 유비와 손권이 서로 싸우는 것이 내용으로 된 중국 소설『삼국지연의』가운데, 적벽강에서의 싸움과 그 앞과 뒤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것인데, ‘화용도’라고도 불린다. 판소리적벽가는 적벽 싸움 부분이 그대로 소리로 짜인 것이 아니고, 그 대목을 중심으로 몇몇 부분이 덧붙거나 빠져서 소리 사설이 되었으므로, 적벽가의 사설을 그대로 옮긴 소리 책은 소설『삼국지』와는 줄거리나 문체 따위가 사뭇 다르다.

소설『삼국지』가 언제부터 판소리로 짜여 소리로 불리었는지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조선왕조 순조 때에 송만재가 쓴『관우회』라는 글에 적벽가가 판소리 열두 마당 중의 하나로 꼽힌 점으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영조·정조 무렵에는 그것이 판소리로 불렸으리라고 짐작된다.

적벽가를 잘했던 명창으로는, 역대 명창 가운데서도 첫손으로 꼽히는 순조 때의 송흥록이 있고, 같은 무렵의 모흥갑이 있다. 방만춘도 잘했는데, 그가 적벽강에 불지르는 대목을 부를 때는 소리청이 모두 불바다가 되는 듯했다고 한다. 송흥록과 모흥갑에게 소리를 배웠던 주덕기는 특히‘조자량이 활 쏘는 대목’의 긴박한 장면을 극적으로 잘 나타내었다고 한다. 철종 때의 명창으로는 서편제 소리의 시조로 꼽히는 박유전이 있고, 같은 무렵의 박만순은 특히‘조조가 화용도를 지나는 장면’을 잘했다고 한다.

적벽가는 내용으로 보아‘삼고초려’·‘장판교 싸움’·‘군사 설움 타령’·‘적벽강 싸움’·‘화용도’, 이렇게 다섯으로 나눌 수 있는데, 바디에 따라서는 장판교 싸움이 없는 것도 있다.

임금이나 사대부(士大夫)들은 판소리 가운데서도 가객이 목청이 당당하고, 호령을 하듯 소리를 질러야 하고, 부침새를 잘 구사해야 하는 적벽가를 특히 좋아하여 송흥록·모흥갑·주덕기·정춘풍·박만순·박기홍과 같은 대명창(大名唱)들이 다투어 적벽가를 불렀다.

유명한 대목으로는 삼고초려·고당상·군사조련·자룡이 활 쏘는데·적벽강 싸움·새타령·장승타령 등이 있다.
윤진철의 보성소리 <적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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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번호 LMCD-0007(CD 3 매)
제작/기획사 The Open Music/Liz Music
발매 년도 2010
소개곡/음반 CD1 T1: 삼고초려 7:00 소리끄기
비고
보성소리는 판소리계에 있어 가장 많은 명창을 배출한 유파이다. 보성소리는 창시자인 박유전이 흥선대군의 ‘강산제일의 소리다’라는 칭찬을 들어 강산제로도 불리는데, 서편제의 소리에 동편제의 장점을 약간 가미한 소리이다. 박유전의 소리는 정재근 - 그의 조카 정응민 - 외아들 정권진으로 이어져 왔으며, 보성소리 ‘적벽가’는 정권진 명창으로부터 윤진철에게 전승되어 있다. 전남 보성군은 박유전, 정응민 등을 배출한 판소리의 성지로 매년 서편제보성소리축제를 개최하여 보성소리의 전통을 계승.발전시키고 있다.

신세대 소리꾼으로 불리는 윤진철은 초등학교 때 목포의 박흥남 명창에게 판소리에 입문하였고, 고등학교 때에는 김소희 명창에게서 소리를 배웠으며, 전남대학교에서 정권진 명창으로부터 적벽가를 배운 정권진 명창의 마지막 제자이다. 그는 ‘적벽가’ 한바탕을 다 배우지 못하였으나 배우지 못한 부분은 음반을 통해 습득하여 보성소리 ‘적벽가’ 한바탕을 완성하였다. 보성소리 정권진제 ‘적벽가’이다. 윤진철이 부르는 ‘적벽가’는 현재 널리 불리는 박봉술제와는 다른 면모로 고풍스런 짜임, 계면화되지 않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음반 1에는 ‘삼고초려’부터 ‘군사설음-아내설음’까지(9트랙), 2에는 ‘군사설음-신부생각’부터 ‘새타령’(8트랙)까지, 3에는 ‘조자룡나오는데’부터 ‘더질더질’(8트랙)까지, 약 180분 분량이 실려 있다. 북은 국립창극단의 조용수가 잡았으며 해설서에는 보성소리 ‘적벽가’의 설명과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오래간만에 듣는 귀한 적벽가이다

2000년에 스승인 정권진 명창의 ‘적벽가’ 한바탕이 브리태니커 레이블로 나온 적이 있다.(2011.10월. 객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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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창 임방울창극 1 <적벽가>(아래 동일곡, 관련곡이 수록된 음반 참조)

임방울(林芳蔚, 본명:林承根, 1904~1961)은 전남 광산에서 부친 임경학과 모친 김해 김씨 사이의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임방울은 박재실 문하에서 춘향가와 흥보가를, 유성준 문하에서 적벽가와 수궁가를 사사받았고 공창식에게도 소리를 배운 바 있다.

임방울은 옛 소리제를 배우는 데 시간을 투자하기 보다는 독공하는 데 시간을 투자했다. 이러한 그의 예술적 취향은 자유분방한 그의 성격에서 비롯되었다 하겠다. 독공으로 다져진 그는 위력적인 통성을 가지고 있었고 스승에게 물려받은 소리제를 자신에게 맞게 바꾸어 불렀다. 임방울은 대가들의 법통있는 옛 소리제를 제대로 익히지 않아 엉성하게 짜서 부르는 대목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귀명창들의 따가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임방울 자신도 말년에는 그런 자신의 단점을 느끼고 소리제를 고쳐보려고도 노력했다. 암튼 그는 타고난 목청과 천부적인 음악성, 피나는 독공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소리를 완성하여 대다수 서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며 소리판을 장악했다.

임방울은 그의 명성 만큼이나 많은 녹음을 남겼다. 일제 때 콜럼비아, 빅타, 오케이, 시에론, 코라이 등 여러 음반회사에서 무수히 많은 유성기음반을 취입했고 1950년대에는 여러가지 릴테입 녹음을 남겼다. 그리고 임방울이 1960년 원각사에서 적벽가 중 <군사 설움타령>을 부르는 장면이 영상으로 남아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녹음집은 그의 여러 음반 중에서 그의 기량이 가장 압축되어 있는, 가장 돋보이는 명반이다. 이 음반이 주목받는 이유는 임방울의 절정기라 할 수 있는 1950년대 녹음인데다 그의 장기인 적벽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 적벽가 음반은 전바탕 완창 공연 실황 녹음이며 고수는 김재선이다.

임방울은 녹음 스튜디오보다는 공연장에서 더 실력 발휘를 잘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시기에 녹음된 것이라도 비공개된 스튜디오보다 관중이 있는 열린 공간에서 부른 쪽이 더 좋다. 그리고 듣는 청중이 많을수록 더 소리를 잘한 것으로 보인다. 스튜디오 녹음에서는 웬지 흥이 없다. 하지만 공연 실황은 다르다. 공연에서는 억지로 소리를 잘 하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흥에 넘쳐서 절로 나오는 소리를 들려준다. 이처럼 그는 닫힌 공간에서는 공연 때 만큼 제 소리를 구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튜디오 녹음을 기피했는지 모른다.

‘임방울 창극조 제1선집’에는 적벽가 녹음 앞에 “지금은 적벽가를 허시겠습니다”라는 설명이 있는데 박귀희의 음성인 것으로 보인다. 임방울의 이 적벽가 공연 실황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판소리라 생각된다. 판소리의 진수를 진하게 맛볼 수 있는 보기 드문 명반이라 여겨 모든 음악애호가들에게 필청을 권하는 바이다.(2004.11.30)
동일곡, 관련곡이 수록된 음반
· KBS-FM 시리즈 47 <판소리 적벽가>(신나라뮤직:NSC-035)
· 안숙선 <적벽가>(삼성뮤직:SCO-156AHN)
· 국창 임방울창극 1 <적벽가>(아세아레코드:ACD-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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