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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唱劇)>

창으로 엮어가는 연극이라는 뜻이며 판소리가 20세기 이후 서양 연극의 형태를 빌어서 무대화된 장르로 판소리에 연극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사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역할을 분담하여 노래하는 새로운 방식의 연희 형식이다.
창극은 여러 사람이 배역을 분담하여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창(唱)으로 대사가 진행되며, 한국의 전통 소리와 춤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고, 복식문화와 생활문화까지 엿볼 수 있는 종합 예술일 뿐만 아니라 창극을 통해 관객들은 한(恨), 정(情), 해학(諧謔)과 같은 한국 고유의 정서를 경험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창극은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에서 1903년 가을에 공연된 <춘향가>가로 알려져 있으며, 이 때의 주인공은 이동백, 강용환, 송만갑, 김창환, 강소향, 허금파였다. 이 최초의 창극은 성공을 거두었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원각사가 폐쇄되고, 1907년에는 협율사라는 창극단체가 서울과 지방(광주)에서 설립되어 기존의 판소리가 점차 창극으로 각색되었다.

본격적인 창극은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가 결성되고 이루어졌는데, 1935년 독지가의 재정적 후원에 힘입어 조선성악연구회는 면모를 일신하고, 정정렬 편극의 <춘향전>을 공연하게 되었다. 이 때의 창극은 무대 조건을 완전하게 갖추고, 새로운 대사를 많이 삽입하여 연극적인 요소를 많이 갖게 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여성으로만 조직된 여성 단체가 늘어나면서 공연 작품도 전통 판소리를 벗어나 설화나 야사, 야화 등으로 확대되었다. 공연 작품이 전통 판소리를 벗어나면서 명칭도 '국극'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한 때 상당한 인기를 누리던 여성 창극, 국극은 1958년 이후 기울기 시작하여, 1960년에 이르러 거의 자취를 감추면서 사라지게 되었고, 1961년 국립극장에 국립창극단이 창단되면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판소리가 창극이라는 종합예술 형태로 확대되면서 상대적으로 판소리가 위축되었는데, 한바탕을 달아서 연주하는 소위 완창무대 보다는 분창이나 토막소리가 일반화되었고 사사계보를 달리하던 여러 명창들이 한 무대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서, 지역적인 특징과 구별이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다.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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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번호 JCDS-0575
제작/기획사 지구레코드
발매 년도 1997
소개곡/음반 CD1-T1:초입 4:14 소리끄기
비고
광복 후에 창극단들이 많은 시련을 겪다가 비로소 자리를 잡은 것은 1970년 국립창극단이 생긴 이후다. 국립창극단의 창립에 있어서 김연수의 공이 가장 컸다. 김연수가 1930~60년대에 창극 활동을 하면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고 얻어낸 결실이 곧 지금의 국립창극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립창극단의 절정기는 김연수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라 생각되는데 여기에 소개된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 음반이 바로 그 시기에 취입되었다.

장시간음반 시대의 창극 음반 중에는 1968년에 제작된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5LP)이 가장 명반으로 꼽힌다.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 음반은 김연수, 박록주, 김여란, 박초월, 김소희와 같은 당대 최고의 기량을 가진 국창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데 가장 큰 매력이 있다.

대부분의 창극 음반은 기악 반주로 녹음되었지만 이 음반은 특이하게 기악 반주 없이 녹음되었다. 기악 반주를 바탕에 깔고 창극을 하는 것은 일제 때에도 있는 일이었으나, 광복 후에 크게 유행하여 장시간음반 시대에 제작된 창극 음반은 거의 기악 반주로 녹음되었다. 그런 유행은 판소리에도 영향을 끼쳐 판소리 음반도 한때 기악 반주로 녹음되었다. 그러나 기악 반주가 소리하는 데 있어서나 소리를 감상하는 데 있어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리꾼의 소리만 찬찬히 듣고 싶어하는 청자에게는 기악 반주가 오히려 소릿길을 가로막는 느낌을 준다. 물론 기악 반주가 특색이 있어서 별미는 될 수 있으나 진지하게 듣기에는 좋지 않고 단촐하게 북 하나만으로 반주된 쪽이 더 낫다.

장시간음반 시대에 제작된 대부분의 창극 음반들은 연출을 맡고 지휘하는 김연수와 같은 구심점이 없거나 충분한 연습 없이 급조되었다. 그래서 녹음자끼리 호흡이 안맞아 어색한 느낌을 주는 창극 음반이 많다. 이 음반의 취입에는 김연수·박록주·김여란·박초월·김소희·장영찬·박봉선·김경희·남해성·김득수·김동준(소리), 한일섭·김득수(고수)가 참여했는데 녹음자들 대부분이 창극단 생활을 함께 하면서 수없이 공연을 했기 때문에 서로 호흡이 아주 잘 맞는다. 이 또한 이 음반이 지닌 장점이라 하겠다.

전체적으로 녹음이 잘 되었으나 녹음기사가 창극을 녹음한 경험이 많지 않아서인지 몇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고수의 북반주와 추임새가 너무 작게 녹음된 점, 명창들의 녹음 크기가 일관성이 없이 녹음자에 따라 크거나 작게 녹음된 점이 아쉽다. 이 녹음집은 김연수의 창본과 거의 일치하는데 이 음반의 대본, 연출 등 모든 제작과정을 김연수가 주도했다고 하겠다.

판소리가 창극으로 각색되어 꾸며질 때에는 판소리에서 불리워지는 대목들이 일부 삭제되기도 하고 판소리에 없는 대목들이 삽입되기도 한다. 김연수의 춘향가 창본과 비교해 보면 이 음반에서는 <춘향이 이도령 만날 몽사를 얻는 데>, <춘향이 추천하는 데>, <금출지내력>, <춘향의 설부화용>, <그른 내력>, <춘향집 경치>, <해소식>, <퇴령 후>, <방안치레>, <춘향모가 음식을 장만하는 데>, <이도령이 춘향모에게 증서 써주는 데>, <비맞은 제비같이>, <하루 가고 이틀 가고>, <갈까 보다>, <행수기생이 춘향 부르러 가는 데>, <몽중가>, <기생 난향이 춘향을 달래는 데>, <쑥대머리>, <과거장>~<어사 행장을 차리는 데>, <박석티>, <어사와 장모>, <사또 생일 잔치>, <옥사정이> 등이 삭제됐다. 그리고 김연수의 춘향가에만 있는 <만복사 찾아가는 데>와 <봉사가 춘향의 꿈을 해몽하는 데>를 삽입시켜 창극의 묘미를 살렸다. 또 3시간 정도로 제한된 음반에 창극을 녹음해야 했으므로 <사랑가>, <이별가>, <십장가>, <옥중가> 등이 간략하게 축소되었다.

이 음반은 판소리를 공부하는 학도나 판소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창극사를 이해하고 대명창들의 소리제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 구실을 할 것이며 귀명창들에게는 판소리 인간문화재 1세대들의 기량을 한 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감상거리가 되리라 생각된다. 이 음반은 광복 이후의 창극 음반 가운데 가장 명반으로 꼽히는 기념비적인 음반이라 여겨 적극 권하고 싶다.(2004.11.30)

* 이 이후 나온 창극 음반이 없다.(사가반 제외) 이 음반 지금도 구할 수 있다.(2012.4.21)
동일곡, 관련곡이 수록된 음반
· <조상현 판소리 창극 춘향가 1>(서울음반:SRCD-1336)
· 콜럼비아유성기원반 (1) 김창룡 도창 <창극 춘향전>(LG미디어:LGM-AK001(K001)*)
· 전주창극 <비가비> - 명창 권삼득-(서울음반:SRCD-8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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