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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가>

조선 후기에 연행되던 판소리 열두마당 중의 하나로 ‘변강쇠타령’, ‘가루지기타령’, ‘횡부가(橫負歌)’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송만재(宋晩載)가 1843년에 쓴 『관우희(觀優戱)』와 이유원(李裕元)의 『관극팔령(觀劇八令)』 가운데 칠언시로 기록되어 있어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실전(失傳) 판소리 일곱 마당 가운데 유일하게 신재효에 의해 판소리 사설로 정착된 작품이기 때문에 실전 판소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신재효가 사설로 정착시킨 시기는 작품 중의 '신기년괴역'(辛己年怪疫)이란 구절을 통해 신기년(1881) 이후로 추정되며 조선 말기의 명창 송흥록·장자백 등이 잘 불렀다는 기록과 근대 5명창 중의 한 사람인 전도성과 익산 출신 명창 유공열 등도 잘 불렀다는 기록이 있어 일제 강점기 까지 연행되다가 이후 판소리의 전승과정에서 소리의 맥이 끊겼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후 전승이 끊어진 소리를 1971년 박동진(朴東鎭)이 신재효 사설에 곡을 붙여 창작하였으며 다른 창작판소리에 비해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변강쇠가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평안도의 음녀(淫女) 옹녀와 삼남(三南)의 잡놈 변강쇠가 청석골에서 서로 만나 함께 사는 내용이다. 옹녀는 여러 도회지를 전전하며 들병장사, 막장사 등으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는데, 강쇠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른다. 이에 옹녀는 강쇠를 달래 지리산으로 옮겨 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강쇠가 땔감으로 장승을 베어다 때어 장승 동티로 죽게 된다. 후반부는 이렇게 죽은 강쇠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시신을 치우는 과정이 복잡하게 전개된다. 결국 뎁득이가 강쇠의 상을 치르는 것으로 끝맺게 된다.

이 작품은 단순히 음란한 성에 대한 경계에 그치는 것이라기보다, 하층유랑민의 비극적 생활상이 광대들의 자술적 전기와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 19세기 농촌공동체의 경제적 분화과정에서 발생한 유민층이 농촌공동체를 지키고자 했던 집단에 의해 패배해간 사회적 현실이 잘 반영되어 있다.
박동진 창 <변강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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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번호 SYNCD-005
제작/기획사 신나라
발매 년도 19XX
소개곡/음반 T2:처음-도방살이 중 4:50 정도 소리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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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진(朴東鎭)은 1916년 7월 12일(음력) 충남 공주시 무릉동 370번지에서 태어났다. 박동진은 젊어서 손병두에게 토막소리를, 그 뒤 정정렬에게 춘향가를, 송만갑에게 흥보가 중 <박타령>을, 유성준에게 수궁가를, 조학진에게 적벽가를, 박지홍에게 흥보가, 김창진에게 심청가를 배웠다.

1968년에 다섯 시간에 이르는 흥보가 완창을 필두로 연이은 판소리 완창 발표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판소리계에 완창 붐을 일으켰다. 이로서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고 판소리의 대명사로서 무수히 많은 활동과 큰 업적을 남겼다.

이는 1990년에 녹음된 인간문화재 박동진 명창의 신작판소리 변강쇠가 음반이다. 박동진의 수많은 판소리 음반 중에서도 특히 이 음반을 대표작으로 선정하고 싶다. 판소리 다섯바탕 외에 사라져 버린 소리를 나름대로 복원해낸 점, 소리 기량이 잘 담기어 있는 점, 번뜩이는 재치와 창작력이 돋보이는 녹음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기에서 고수는 그의 수행고수 구실을 한 주봉신이 맡았고 1990년 8월에 녹음되었다. 대방 장승 회의부터 변강쇠 유언에 이르는 대목이 박진감 넘치고 잘 짜여져 있다. 박동진 명창은 2003년 7월 8일 타계하였다. (2004.11.30)
동일곡, 관련곡이 수록된 음반
· 국악대전집 제27집 <가루지기타령(2)>(삼성미디어/오아시스:OSKC-1077)
· - 이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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