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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가요(國樂歌謠)>

신민요·창작민요의 형태를 갖고 있으며 국악어법으로 창작한 대중가요의 하나이다.

국악가요의 원천인 신민요라고 하는 창작민요는 일제강점기에 <진도아리랑>·<도라지타령>·<노들강변>·<천안삼거리> 등에서부터 시작한고 볼 수 있으며 축음기의 출연과 함께 일본 레코드사에서는 신민요와 <장한몽>·<시들은 방초> 등의 유행가를 함께 취입하여 1930년대 유행시켰는데 이로 인해 유행가와 혼동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음악체계와 팝송의 유입으로 민요는 전문국악인에게만 남고, 유행가는 민요적 요소를 차차 잃어 완전히 서양식 어법으로 변했다.

그 후 창작민요는 거의 없었는데 1970년대부터 국악가요에 가까운 국악민요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영동의 <누나의 얼굴>·<개구리타령>을 비롯해 변규백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김민기의 <가뭄>과 같은 노래를 그 시작으로 본다.

그러나 본격적인 민요의 작곡은 1984년 ‘민요연구회’의 발족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민요연구회는 민요의 발굴·창작에서 확산·보급까지 ‘민요운동’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김용수의 <저 놀부 두 손에 떡들고>, 김석천의 <남도의 비>, 이정란의 <엉겅퀴야>, 이성재의 <고향생각> 등이 이 시기에 만들어진 노래이다.

이렇게 이루어졌던 국악가요의 창작과 활성화는 1987년 11월 KBS국악관현악단에서 발표한 국악가요를 출발로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나 국립국악원,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도 국악가요 공연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국악의 대중화를 꾀하는 ‘국악가요 공연’은 대중가수들과 협연을 시도하기도 하고 국악기로만 구성된 전문연주단의 활동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발전하고 있다.
<도신의 국악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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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번호 SRCD-1510
제작/기획사 서울음반
발매 년도 2003
소개곡/음반 T2:나그네 4:46 소리끄기
비고
국악가요, 필자는 아직도 국악가요의 정의에 대해 확신이 없다. 음반을 제작하는 사람이 국악가요라고 하면 국악애호가인 필자가 국악가요가 아니다라고 할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김영동 선생이 한 작업들, 김용우가 한 작업들을 국악가요라고할 수도 있다. 도신스님이나 심진스님이 하는 작업도 국악가요가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도신 스님은 1970년에 예산 수덕사에 입산하여 불교에 입문한 그는 불교음악에 특히 심취하여, 불교세계의 깊이와 정신 사상을 중광스님으로부터 배우는 제자이다. 1989년에는 국악실내악단인 슬기둥과 함께 세종문화회관에서 국악가요을 공연하여, 불자뿐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다.

1991년 도신 스님은 그가 즐겨 부르는 국악가요를 한장의 음반으로 담았다. 모두 자기의 작곡으로, 조광재가 편곡하여 슬기둥의 반주 아래 '엄마' 외 9곡을 담았다. 1997년에는 <도신의 국악가요 III>라는 이름으로 3집을 출반하였다. 반주는 국악기와 서영악기가 함께 한다.

따라 부를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듣기는 편하지만, 국악가요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들으면 일반가요같이 들려 고민스럽다.(2004.11.30)
동일곡, 관련곡이 수록된 음반
· 천상의 목소리 조주선의 두번째 앨범 <여정>(EMI/독립군기획:EKLD-0376)
· 김영동 노래집 <하나>(웅진:WJCC-0547)
· 이성원 <동쪽 산에>(Universal:DE-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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